2012년 11월 16일 금요일

초소형PC - PC 얼마나 더 작아질 수 있을까?


PC 얼마나 더 작아질 수 있을까?

최근 데스크톱PC 시장이 급격히 축소되면서 일체형과 초소형으로 분화가 뚜렷하다. 일반적으로 기업들이 내놓는 데스크톱PC는 가격대 성능비가 우수한 조립PC와 이동성이 뛰어난 노트북 등에 완전히 밀리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PC기업들이 내놓은 해법이 바로 일체형과 초소형이다. 이같은 경향은 애플의 맥PC 전략에도 잘 드러나 있다. 애플은 전통적인 데스크톱PC 형태의 맥프로 대신 아이맥과 맥미니에 주력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초소형PC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일상적인 사용에 무리가 없는 충분한 성능 그리고 뛰어난 디자인 및 공간 활용성으로 최근 높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CPU와 GPU가 통합되고 저장장치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성능은 그대로면서 부피는 더욱 작아진 초소형 PC가 속속 선보이는 추세다.

초소형 PC의 대표주자는 애플의 맥 미니다. 맥 미니는 가로 세로 19.7cm 정사각형 크기에 두께는 3.6cm에 불과하지만 성능은 일반 데스크톱PC와 비교해 결코 손색이 없다. 인텔 3세대 코어 프로세서 i5와 i7을 탑재한 결과다. 최대 16GB 메모리와 썬더볼트 및 미니디스플레이 포트 등을 채용했으며 디자인 역시 애플답게 깔끔하다.

▲ 애플 맥 미니(197mmx197mmx36mm)
레노버는 맥 미니보다도 더 작은 초소형 PC ‘아이디어센터’ Q시리즈를 선보였다. 가로 19.2cm이며 세로는 15.5cm, 두께는 2.2cm에 불과한 크기지만 갖출 건 다 갖췄다. CPU는 보급형인 인텔 i3 코어프로세서를 장착했으며 7.1 서라운드 광출력을 비롯해 HDMI 단자, USB 3.0 카드리더는 물론 블루레이 드라이브도 별도 판매한다. 가격 역시 349달러로 맥 미니보다 저렴한 편이다.

▲ 레노버 아이디어센터 Q190(192mmx155mmx22mm)
국내 한 중소기업은 이보다도 더 작은 PC를 내놓을 예정이다. 베어본 및 산업용PC로 잔뼈가 굵은 비아코는 나노 ITX 기반의 초소형 PC 나노 레터를 내주 출시한다.

이 제품의 크기는 가로 14cm, 세로 13cm이며 두께는 3cm에 불과하다. 이 제품에 사용된 나노ITX는 정식 PC 규격은 아니지만 이미 지난 2008년부터 메인보드가 생산됐다. 비아코는 이를 바탕으로 완제품 PC를 생산한 것.

▲ 비아코 나노레터(140mmx130mmx30mm)
와이파이와 블루투스를 지원하며 오디오 아웃, 마이크 인, e사타, HDMI포트, 4개의 USB 등 충분한 확장 단자를 갖췄다. CPU는 아이비브릿지 기반으로 생산된 셀러론이 사용되며 mSATA 규격의 SSD를 저장장치로 활용한다. 가격은 69만원으로 책정될 예정이다.

윈도OS가 구동되는 X86 기반 세상에서 가장 작은 PC는 스웨덴 토라텍스사가 지난해 선보인 실루온 PC다. 이 PC의 크기는 가로 8.9cm 세로 6cm이며 두께는 1.6cm로 담뱃갑과 비슷하다. 이렇게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4개의 USB 단자를 갖춰 마치 USB 허브를 떠올리게 한다.

▲ 토라텍스 실루온 PC(89mmx60mmx16mm)
CPU는 인텔 싱글코어 아톰 프로세서가 장착됐고 GMA600 내장그래픽과 최대 2GB 메모리를 지원한다. 뿐만 아니라 HDMI 연결이 가능한 DVI-D 단자까지 갖춰 모니터와 연결도 문제없다. 크기가 워낙에 작아 별도의 냉각팬이 없어 소음도 없다. 

2012년 11월 11일 일요일

나무로된 아이폰 케이스(카메라 무늬)


iPhone 4 Wooden Case Looks Retro, Mimics Camera Design

August 29th,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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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if owning an iPhone 4 isn’t special enough, you now get to turn your unit into something even more special. I’m talking about the wooden case for iPhone 4 pictured below. Aside from making your device look like a genuine camera, this accessory will protect it from various risks, possibly excluding termites.
The covering case is made of walnut and bamboo, pretty resilient materials that protect the iPhone from damage. Laser engraving has also been applied to this wooden case and in case you hold the handset + case in your hands, you’ll feel as if you’re using a regular camera. The inside of the accessory incldes a layer of felt, for extra cushion between the smartphone and the glossy outer shell.
The problem here is actually a dilemma: if plastic polutes nature, then wood is better for a case, but what about the trees that were taken down to make the case? Back to the concept iPhone case itself, you must’ve notice that it comes with two sections, that can be easily detached from the middle. Of course, as anyone would predict, the case allows you to access the volume button, camera flash, piower button and headphone jack easily.
[via designbuzz]

New Concept of iPhone










You’ve seen many iPod nano used as a watch, but given enough time, Apple could cram a smartphone in that space – the battery size is the final frontier here. Designer Olivier Demangel has imagined what an iPhone nano would look like, and how it could be turned from what looks like an miniature phone to the most advanced phone-watch, which includes a speaker phone and webcam functionality. The best part of the design? it is too small to feature a proprietary connector, so micro-USB is the interface of choice.
The device is build using machined-aluminum and is modular enough to let users change the wrist bands (plastic, leather, metallic…) to match their desired look. Its creator doesn’t mention it, but a necklace version is totally doable as well. The screen is too small for typing, but updated versions of Apple Siri voice assistant have made the keyboard obsolete. Just like the rest of the “iFamily”, this concept features a Retina display with a Twist: it uses a trans-reflective LCD display which uses sunlight to increase the screen brightness, which makes it very readable on a sunny day. In dim situations, a small back light kicks in.
What do you think of this design? Do you think that the day will come where smartphones won’t be in our pockets and purses anymore?
iphone-nano-concept-01 iphone-nano-concept-02 iphone-nano-concept-03 iphone-nano-concept-04 iphone-nano-concept-05










2012년 11월 10일 토요일

실리콘으로 만든 미니오븐장갑




US · 5402 photos
Silicone Green Mini Oven Mitt - $9.95 [ Visit Store » ]

Silicone mitt uses gripping "teeth" to grab piping-hot baking dishes and pans.


- Silicone
- Fits either hand
- Hanging hook
- Heat-resistant to 500 degrees
- Dishwasher-safe
- Made in China

 







http://www.houzz.com/photos/792363/Silicone-Green-Mini-Oven-Mitt-modern-oven-mitts-and-pot-holders-

피자를 집에서 굽기 위한 미니화덕


피자를 집에서 굽기 위한 미니화덕



01. 18. 2008


Bake your own pizza on the stove

japanesepizzeria1.jpg
Handy for those of us who don't have a real oven in the kitchen, the Pizzeria is a ceramic mini-oven designed to sit on top of the stove and bake away merrily. I don't entirely follow the Google translation of the product webpage in Japanese, but it seems to suggest that the ceramic qualities of the oven generate "infrared radiant heat" that bakes a pizza at 570 degrees Fahrenheit in 3-6 minutes (excluding 15-20 minutes of preheating).
japanesepizzeria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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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hole Pizzeria set weighs about 11 lbs and consists of the mini-oven, the plate that functions as the pizza tray, a saucer below it which sits on the stove and a spatula-like metal peel for sticking the pizza into the oven. It fits 10" pizzas and will work with frozen pizzas too. It's made by Japanese company Hakuho, which specialises in heat-resistant cookware.
No price is listed on the Hakuho site, but Impress Watch (Google translation here) reports that it's 10,000 yen or US$93.
Via Tokyomango.





http://www.popgadget.net/2008/01/bake_your_own_p.php



2012년 11월 6일 화요일

아이폰 + 카세트 아이디어 상품



아날로그를 디지털化 시키는 아이디어상품 - "추억을 휴대폰에 넣고 다닐 수 있게 하다!"


아이폰 + 카세트 아이디어 상품.jpg
76.--.118.14611/6/2012 (19:10:23) Modify Delete
Ion Audio라는 오디오기기 회사에서 카세트 테입 음원을 MP3 포맷으로 바꿔주는 기기가 나왔다. 한쪽면에는 카세트가 다른 한쪽면에는 아이폰이 들어가는 컴팩트한 디자인이다. 기기와 동반되어 나오는 앱을 이용해 카세트의 음원을 MP3로 변환해서 아이폰에 저장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워크맨을 들으면서 자란 30대 중반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제품으로 가격은 $69.99. 한 통계에서는 현 미국 10대들은 카세트 테입을 구경조차 못한이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창조자의 비밀, DNA를 푼 사나이



[이재구코너]
창조자의 비밀, DNA를 푼 사나이

이재구 국제과학전문기자 jklee@zdnet.co.kr
2012.04.30 / PM 11:59
지디넷 코리아

1953년 4월 25일=생명복제와 유전의 열쇠 DNA암호를 풀다 

1■모기피에서 추출한 DNA로 실현한 쥬라기 공원 

1993년 여름. 전세계는 스티븐 슈필버그 감독이 만든 한편의 영화에 온통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전세계 영화가를 석권하면서 세계적인 ‘쥬라기 공원’ 열병을 몰고 왔다. 6천300만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이 해 여름보다 더 뜨거운 인기 속에 9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무한 할리우드 사상 최고의 베스터셀러로 떠올랐다. 그 인기는 ET를 넘어섰고 흥행기록은 4년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타이타닉이 등장할 때까지 깨지지 않았다. 

인간이 살지 않던 1억년전 공룡시대의 놀라운 환상여행은 그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었다. 사람들은 인공부화된 공룡들의 생태공원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를 통해 신비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기묘한 현장으로 홀린 듯 빠져 들어갔다가 나왔다.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이 과학적 상상력을 현실적 가능성과 교묘히 짜내어 만든 이 소설의 시작은 도미니카 공화국의 호박 광산에서부터 시작했다. 
▲ 쥬라기 공원에서는 호박에 들어있는 모기가 1억년전 공룡에게서 빤 피에서 DNA를 복제하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막에서 중생대 공룡뼈 화석을 추리고 있던 그랜트박사 앞에 난데없이 나타난 해먼드 인젠그룹회장은 그를 쥬라기공원이 있는 코스타리카의 외딴 섬 이슬라 누블라섬에 있는 연구소로 데려간다. 영화속 해먼드 회장이 인공 쥬라기공원을 소개하는 영화속 영화에서는 쥬라기공원의 상상력이 현실로 되는 순간을 소개한다. 영화속에서 의인화된 DNA가 쥬라기 공원내 공룡의 탄생과정을 설명한다. 

“피한방울에는 수십억개의 DNA가 들어있어요. 생명을 만드는 벽돌이라 할 수 있죠. 저같은 DNA는 생명구성의 청사진 같은 겁니다. 가끔 공룡처럼 수백만년전 멸종한 동물들도 우리가 찾을 수 있게 그 청사진을 남겨 놓았죠. 우린 그것이 있는 위치만 찾으면 됩니다. 1억년전에도 현대처럼 모기가 있었어요. 그때도 모긴 피를 빨아먹고 살았죠. 공룡피까지도요. 간혹 공룡피를 빨았던 모기가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나무 수액에 갇히기도 했죠. 오랜 세월이 흐르면 수액은 공룡뼈처럼 화석이 되죠. 모기가 갇힌 채로요. 그 화석화된 나무 수액, 즉 지금의 호박은 수백만년간 모기를 머금고 있다가 우리쥬라기 공원 과학팀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모기에 보존되어 있는 피를 최신기술로 추출합니다. 맞았어요.. 공룡의 DNA가 나왔어요! 30억개의 유전암호를 가진 DNA죠....오래된 DNA의 결함은 유전학자들이 전담했답니다.생각하는 기계인 슈퍼컴과 유전자 조절기가 DNA를 분석하면 유전학자들은 입체영상컴퓨터로 결함부위를 찾아 완전한 개구리의 DNA를 이용해 결함부위를 채웁니다. 그렇게 아기공룡이 만들어져요....”

2■네이처에 수록된 DNA의 원리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이처럼 생생하게 DNA를 조작하는 장면을 묘사하면 유전자 복제가능성을 노래하도록 해 준 사건은 결정적 사건은 그로부터 꼭 4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3년 2월28일 아침. 미국과 영국의 두 젊은 과학자가 한 과학잡지에 DNA분자 구조를 발표하기 두달 전이었다. 
▲ 왓슨과 크릭이 처음 풀어낸 DNA의 원리.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빈디시연구소의 연구원 왓슨과 크릭은 자신들이 생각한 DNA 유전형질의 요소 모형을 구성하는 종이로 만든 핵심요소들을 제자리에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만들었다!"

왓슨과 크릭은 3월 7일 높이가 180cm가 넘는 DNA 모델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두 사슬이 아데닌-티민과 구아닌-시토신 염기 쌍 사이의 강력한 수소결합을 통해 함께 연결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달여 후인 1953년 4월 25일 과학전문잡지 네이처에 ‘핵산의 분자구조: 디옥시리보핵산(DNA)의 구조’라는 논문이 발표됐다 발표자는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었다. 

겨우 128줄로 이뤄진 이 짧은 논문은 이후 가장 위대한 생물학적 이정표를 세운 논문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이 짧은 논문의 끝에서 두 번 째 구절은 이 논문을 생물학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만들 중요하고도 유명한 구절을 담고 있었다. 

“우리는 염기가 쌍을 이룬다는 우리의 가설이 곧 유전자의 복제 메커니즘을 의미한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바로 왓슨과 크릭을 가장 흥분시킨 '두가닥을 따라서 늘어서있는 염기들이 상보적'이라는 사실을 적어놓은 부분이었다. 

왓슨은 자신이 쓴 ‘DNA:생명의 비밀’ 이라는 저서에서 자신이 발견한 이중나선 작동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 가닥에 있는 염기서열들의 배열순서를 알면 다른 가닥에 있는 염기서열도 자동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세포분열에 앞서 염색체가 두배 늘어날 때 유전자들의 유전부호가 정확히 복제 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점이 명백해졌다. 그 분자는 마치 ‘지퍼처럼 열려서’ 두가닥으로 분리된다. 각 가닥은 새로운 가닥을 합성하는 주형 역할을 한다. 이런 식으로 이중 나선 하나가 둘로 늘어나는 것이다...“ 

3■생명복제의 비밀을 풀다 
이후 DNA구조를 이중나선으로 규정한 이 네이처의 논문은 쓰여진 그대로 가장 간략하게 지구상의 모든 생물학자들은 물론 인반인들에게까지 이 생명복제의 기본 원칙을 알려주는 전범이 되었다.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 보면 세포는 핵과 세포질로 구성돼 있다. 세포질은 중앙의 핵을 감싸고 있다. 유전물질인 DNA는 이 핵속에 들어있다. 실처럼 생긴 DNA가 꼬여 굵어지면 염색체가 된다. 따라서 유전자도 염색체 안에 있다. 핵 안에는 유전자안에 든 정보를 활성화하고 염색체를 복제하는 세포장치가 들어있다. 

세포하나에 들어있는 염색체를 모두 꺼내 풀어보면 길이가 2m정도 된다. 이 안에는 3만에서 5만개의 DNA사슬이 유전자 사이사이에 들어있다. 

가장 단순한 세포에서 발견된 분자만 해도 2500종류가 넘는다. 이러한 분자들 중에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단백질과 핵산이다. 

DNA는 단백질 생산을 궁극적으로 통제하며 단백질을 통해 세포의 모든 대사와 성장과정을 통제하는 핵심 분자다. 따라서 DNA의 구조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밝혀낸다면 궁극적으로 생명의 비밀을 풀수 있게 된다. 왓슨과 크릭이 발견한 비밀은 바로 그것이었다. 

4■맨해튼프로젝트 이후 생명에 대한 외경...

1950년 5월 미 인디애나 대에서 생화학박사학위를 받은 청년 왓슨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스물한 살이 된 그는 코펜하겐에서 생화학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비를 받아 유럽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양자 과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나서 생각을 바꿨다.

나치를 떠나 아일랜드로 간 세계적 양자학권위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자신의 강연과 이 책에서 “유전자가 생물학의 핵심문제이며 유전자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발견하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생명을 죽이는 원자핵 연구와는 정반대쪽에 있는 것이어서 참신했다. 

슈뢰딩거는 1940년 아일랜드 수상 드 벌레라의 초청을 받고 더블린으로 갔다. 

더블린강연에서 슈뢰딩거는 선언했다. 

"이제 살아있는 생물을 그들이 가진 원자와 분자 구조차원에서 생각할 때가 왔습니다."

이제 산 것과 죽은 것은 그들 모두가 동일한 물리,화학법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이후 원자폭탄을 제조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일한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전후 생물학으로의 전환은 죽음의 과학이 생명의 과학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한 전환은 이념적인 동시에 지성적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유전의 화학적 근원을 이해하려는 연구가 잠시 중단되었지만 이제 사람들의 관심이 생물학으로 쏠린 것이었다. 

칼텍의 물리학자 스텐트는 "전후 직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던 물리학자들에게 양자역학의 창시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은 자신의 열과 성을 바칠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쳤던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그리고 물리학자들도 여기에 가세해 생물학적 문제에 자신들만의 언어인 물리학을 사용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왓슨은 이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촌에 있는 캐번디시연구소라고 판단했다. 그 연구소에는 X선사진을 이용해 생물분자의 3차원 구조를 해명해 내는데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기술을 갖고 있었다. 
▲참혹한 대량살상으로 종결된 2차대전이후 에르빈 슈뢰딩거의 강연을 듣거나 그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명받은 학자들은 생명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했다. 사진은 나카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 팻맨의 모델.

2차대전으로 전쟁중 연구소가 폭격을 맞아 물리학 박사학위과정을 접은 크릭역시 이 책을 읽은 과학자중 한사람이었다. 

“생물학을 분자개념으로 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써 놓았다. 이런 생각은 그전부터 있었지만 슈뢰딩거의 책은 생물학에 들어오지 않았을 사람들을 아주 적절한 때에 끌어들였다.”

왓슨은 후일 슈뢰딩거에 책에 대해 그렇게 쓰고 있었다. 

슈뢰딩거의 영향을 받은 크릭이 생물학으로 전공을 바꾼 것은 캐번디시에서였다. 

크릭은 연구비를 신청하면서 이렇게 썼다. 

“나는 주로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분야, 다시 말해 단백질 바이러스 염색체 구조같은 것으로 대표되는 분야에 관심이 있다. 다소 먼 일이지만 최종목표는 이것들의 활동들을 구조를 통해 설명해 내는 것이다. 이를 생물학의 화학물리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사람은 전쟁이 끝난 1947년 캐번디시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함께 연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캐번디시에서 한블록 떨어진 식당 이글에서 거의 매일 함께 점심을 먹었을 정도로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슈뢰딩거의 영향을 받아 연구하려 한 분야는 당시 최고의 관심사였던 생물학적 문제에 집중됐다. 바로 인간의 유전자를 이루고 있는 분자인 디옥시리보핵산, 즉 DNA의 구조를 알아내는 일이었다. DNA의 구조를 알면 생물의 활동과 번식에 관한 수많은 기초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지식은 서로 달랐다.

둘이 함께 DNA연구를 시작한다는 것은 물리학을 공부한 크릭의 전공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2년동안 단백질을 연구해 왔고 그 주제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었다. DNA연구로 전환하려면 최소 2년은 꼬박 걸릴 것이었다. 게다가 영국과학계에서 DNA연구로 명성이 높은 킹스칼리지의 모리스 윌킨스와도 경쟁도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크릭은 왓슨과 함께 DNA문제를 다루면서 자신들의 개성과 입장이 톱니바퀴 처럼 잘 맞물렸다고 회상했다. 

5■1951년, 강력한 라이벌 라이너스 폴링의 등장 
이들과 DNA구조를 밝혀낼 최대 라이벌 중 하나는 케임브릿지에서 멀리 떨어져 대서양을 건넌 미국대륙 캘리포니아 공대에 있었던 라이너스 폴링이라는 과학자였다. 

그는 화학자로 시작해서 분자생물학의 주요인물에 오른 사람이었다. 왓슨과 크릭은 DNA연구를 시작할 때부터 폴링이 주요 경쟁자라는 사실을 잘 의식하고 있었다. 

라이너스 폴링은 평생동안 분자구조를 연구해 온 학자였다.

그가 1948년 캘리포니아를 떠나 옥스퍼드 초빙교수로 갔을 때의 일이었다. 

폴링은 추운 영국 봄날씨에 감기에 걸려 몹시 힘들어 했다. 따분해진 그는 폴리펩티드 결합이 사실이 완전히 납작하고, 원자들이 한 평면에 놓이게 된다면 어 모습일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언뜻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찾는 펩티드결합이 사실이 납작하지 않고 용수철처럼 꼬여 있는 나선 모양일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종이를 접어서 나선을 만들어 보았다. 그는 한 펩티드에 있는 수소원자와 서너개 떨어져 있는 펩티드의 산소 원자들 사이에서 수소결합이 이뤄지고, 이는 결국력져 꼬인 사슬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펩티드는 사실은 오른쪽으로 꼬여있고 나선의 한바퀴에 펩티드 단위가 정확히 3.6개가 들어간다!” 

그는 이 폴리펩티드모양에다 ‘알파나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듬해 폴링과 그의 조수는 발견결과를 더 확장해 논문 7편을 더 발표했다. 폴링과 코라이의 단백질 논문을 본 크릭과 왓슨을 비롯한 생물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단백질을 생각할 때 맨 처음 떠오른 질문은 단백질을 구성하는 단위인 아미노산이 그저 쌓여있는지, 아니면 체계적으로 붙어있는가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폴링은 이제 단백질의 화학결합 특성과 역할은 물론 알파나선이라는 특수한 구조가 있으며 여기에는 수소결합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함께 밝혀냈다. 

1930년대 중반이 되면서 단백질이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긴 했지만 특성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폴링을 비롯한 여러 화학자들은 거의 동시에 '알파나선‘이라는 그 문제의 답을 찾아냈다. 세계 생물학계는 폴링의 성과를 계기로 미약하긴 하지만 분자의 DNA구조를 밝히는 쪽으로 한걸음 더 바싹 다가가고 있었다. 

알파나선은 아미노산 사슬을 돌아가게 하는 구조로서 단백질에서 발견되는 가장 중요라는 요지의 연구성과였다.  이제 폴링이 단백질 분자의 기본 구조중 하나를 발견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물론 캐빈디시의 왓슨과 크릭팀도 연구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6■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실마리를 풀어낸 세기의 발견 
그런데 왓슨과 크릭이 있는 영국에는 또다른 강력한 라이벌이 함께 하고 있었다. 

1938년 2월. 과학자가 되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란 유태인 여학생이 바로 그녀였다. 로잘린드와 X선 결정학의 아버지 윌리엄 로렌스 브래그교수와의 만남은 그녀의 삶을 ‘세상을 .바꿀 여성과학자’의 삶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응집한 결정에 X선을 쬐면 X선 회절현상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른 바 브래그의 법칙이었다. 

이는 X선 촬영을 통해 분자물체의 가장자리나 좁은 틈새를 지나는 X선 파동이 휘어지면서 X선을 쬐 분자 내부가 규칙적인 원자정렬을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 X레이카메라로 찍은 DNA회절 모습. 이것이 DNA의 모습을 밝히는 실마리가 됐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이 사진이 실제 DNA의 모습이 아니라 X선이 원자에 부딪쳐 회절되어 반사된 모습이란 것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각도에서 찍어야 DNA구조를 가장 잘 알아낼 수 있을지 알고 있었다. 

다행히 분자들이 규칙적으로 응집한 형태를 얻어 이를 컴퓨터로 해석하면 분자의 3차원 구조를 알 수 있었다. 

가시광선카메라와는 달리 X선을 이용해 분자구조를 볼 수 있는 렌즈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던 때였다. 따라서 X선을 쬐어 분자의 형태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이 분자형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952년 왓슨과 크릭은 폴링이 DNA구조를 밝혀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2월에 발표된 것이었다. 

“DNA는 각 사슬이 나선을 이룬 세가닥의 사슬구조다.”

왓슨은 이런 요지로 폴링의 논문이 발표되자 그것을 킹스칼리지의 윌킨스와 로잘린드 프랭클린에게 보여주기 위해 런던으로 갔다. 

이 당시 케임브리지대에서 복도를 함께 내려오던 모리스 윌킨스는 왓슨과 크릭에게 중요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막 새로운 발견을 했다네!”

윌킨스는 킹스칼리지로 옮겨 연구중인 로잘린드의 상관이었다.  그리고 로잘린드는 윌킨스가 2년 전 패러데이학회에서 스위스 과학자 루돌프 지그너로부터 얻어온 분자량이 풍부한 겔모양의 핵산샘플로 DNA구조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해 오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는 아직 정확한 DNA구조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X선 촬영을 통해 아주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는 DNA섬유가 두가지 형태의 X선 회절패턴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좀 더 젖은 DAN섬유 사진을 분석한 결과 건조한 DNA사진에서보다 좀더 회절을 많이 보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녀가 X선 결정촬영을 통해 처음 밝혀낸 성과였다.  

당시 케임브리지와 영국의 실험실에는 미국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것보다 더 좋은 X선 회절장치가 있었다. 사실 영국에서 얻은 X선회절 패턴이 더 선명했고 DNA분자 특성을 알아내는 일도 그만큼 더 쉬웠다. 
▲ 왓슨과 크릭보다 먼저 DNA구조 사진을 촬영해 구조를 이해하고 있었던 로잘린 프랭클린.
왓슨은 이 사진을 접하자 자신보다 먼저 DNA구조를 발견한 듯한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선수를 빼앗긴 데 따른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진을 본 순간 입이 쩍 벌어지고 맥박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 패턴은 전에 찍었던 것보다 단순했다. 더구나 사진에 뚜렷이 드러난 검은 X선 모양은 나선형 구조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왓슨과 크릭은 몰랐지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연습장 한켠에 있는 스케치에 나선구조를 가지고 있는 스케치를 그려놓았다.  

게다가 크릭과 왓슨은 이제 자신들이 미국의 폴링과 막상막하의 경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 절실히 깨달아가고 있었다. 

기껏해야 일주일이면 그가 DNA구조를 발견해 낼지도 몰랐다.  경쟁자들은 서로 누가 DNA구조를 먼저 발견해 최초의 영예를 차지하느냐를 두고 눈에 불을 켜고 경쟁하고 있었다.  

케임브리지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왓슨은 두가닥,세가닥의 DNA모형을 생각나는 대로 그려 보기 시작했다.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그는 대학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뒤로 돌아가서 뒷문을 넘는 순간 나는 두가닥 모형을 만들기로 결정했다.그는 물리학자였지만 중요한 생체물질들이 쌍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크릭도 동의하지 않았지만 크릭도 왓슨이 두가닥 모형에 집중하면서 계속해서 두가닥과 세가닥 DNA구조를 연구했다. 

7■왓슨과 크릭, 생명의 비밀을 풀다 

왓슨은 X선 회절 사진을 바탕으로 두가닥 모형을 만들려고 애쓰다가 몇가지 주요 문제점들을 파악했다. 

하나는 네 염기(A,T,G,C)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두 개는 크고 두 개는 작았다. 또하나는 DNA사슬에 있는 염기의 서열이 불규칙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곧 해결됐다. 

“그 문제의 핵심은 염기 사이의 수소결합을 지배하는 규칙에 있는 것 같은데.”

왓슨이 크릭에게 말했다. 
▲ DNA복제의 원리
그에게 갑자기 아데닌(A)과 티민(T) 쌍이 두 개의 수소결합으로 묶이고 구아닌(G)과 시토신(C) 쌍이 최소한 두 개의 수소결합으로 묶이면 모양이 똑같아진다는 사실이 떠 올랐다. 

염기는 산의 반대물질로 산이 만들어내는 수소이온과 결합하는 화학물질이다. 이 수소결합들은 모두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것 같았다. 

"크릭, 두종류의 염기쌍을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전혀 없어."  

DNA의 구조를 파악해 모형을 만들려고 고민하던 왓슨이 말했다. 

"왓슨, 이건 샤가프의 비율이야!"

왓슨의 말을 듣자마자 크릭은 왓슨이 발견한 모델에 대해 확신하면서 대답했다.  

에르빈 샤가프는 오스트리아 난민과학자로서 뉴욕 컬럼비아 의대에서 일하던 1949년 DNA가 이루는 네가지 염기의 비율을 분석하고는 흥미로운 일치점을 발견해 낸 인물이었다.  

즉, 그는 퓨린계열의 염기인 아데닌과 구아닌의 수가 피리미딘 계열의 염기인 티민,시토신의 수와 언제나 같다는 사실을 이미 밝혀냈던 것이다. 이 비율은 모든 DNA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했지만 샤가프는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왓슨과 크릭은 그 비밀을 풀어낸 것이었다. 

샤가프가 제시한 이 모형에서는 이론상 두 개의 DNA사슬이 지름 20옹스트롬인 알파나선으로 꼬여 34옹스트롬마다 한바퀴 돈다. 또 각 사슬에 있는 염기끼리는 3.4옹스크롬 떨어져 있다. 이 구조는 인산 사슬이 선로를 만들고 염기들이 선로사이를 잇는 철도모양이었다. 

이 두 가닥 구조 는 가상의 중심선을 따라 오른쪽으로 꼬여 있었다. 

이 모형을 따르게 되면 DNA분자는 스스로 복제될 수 있다. 두사슬은 떨어질 수 있고 각 퓨린은 자신에게 맞는 피리미딘과 쌍을 이루어 원래의 사슬과 똑같은 새 사슬을 만들어낸다. 

크릭은 그날 오후 자주 가는 선술집에 가서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우리가 생명의 비밀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후일 크릭은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신의 집에 황금나선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면에 놋쇠로 만든 나선문양을 붙였다. 

그는 후일 DNA구조 발견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DNA구조를 풀었다는 것. 그 해답은 나를 믿을 수 없을 만큼 흥분시킨다는 것. 폴링의 이름이 알파나선을 생각나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이중나선을 생각나게 하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3월 7일 그들이 높이 180cm가 넘는 DNA분자모형을 완성했다. 모리스 윌킨스는 그 분자 모형을 보고 무척 좋아했다. 

한 동료 과학자가 보낸 편지를 통해 그 구조 이야기를 들은 라이너스 폴링은 4월 첫째주에 케임브리지를 방문해서 그 모형을 보았고 그것이 옳다는 데 동의했다. 
▲ 왓슨과 크릭의 논문이 게재된 1953년 4월25일자 네이처지.

프랜시스 크릭은 그 구조를 설명하는 논문을 4월 2일에 과학전문잡지 네이처에 보냈고 그 논문은 4월 25일자에 실렸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문장이 들어있었다. 

“우리가 추정한 특수한 쌍이 유전물질의 복제 메커니즘을 시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왓슨과 크릭이 무엇을 가져왔나? 
왓슨과 크릭의 발견을 토대로 연구자들은 유전자를 조작하고 옮길 수 있는 기술들을 개발해 왔으며 DNA재조합기술은 새로운 산업과 치료분야를 낳았다. 

원하는 유전자를 세균에 넣어 대량 복제하는 유전공학 덕분에 치료용 인슐린 같은 단백질이나 성장호르몬을 대량 생산활 수 있게 됐다. 이런 유전자 기술은 농업에도 쓰일수 있다. 곤충의 공격에 저항할 수 있는 식물종을 개발하거나 우유나작물 생산량도 늘릴 수 있으며 새로운 색깔과 무늬를 가진 꽃을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동물복제도 가능해졌다. 

한세포의 DNA를 다른 세포로 옮겨 동물의 유전자복사본을 만들어 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크릭(맨왼쪽)과 왓슨, 그리고 윌킨스가 DNA발견 공로로 노벨상수상자가 됐다. X선을 지나치게 쬐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난소암으로 요절한 로잘린드 프랭클린도 살아있었다면 당연히 수상자감이었다.

유전자기술은 치료에도 쓰일수 있다 .유전자기술은 치료에도 쓰일 수 있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비정상 유전자를 정상유전자로 바꿔 넣으면 호나자의 유전자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비정상유전자를 정상유전자로 바꿔넣으면 환자의 유전자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유전자 요법은 1990년에 행해졌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소는 질병에 맞서 감염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켜내지 못하는, 면역계에 이상이 있는 소녀를 치료했다. 그들은 감염 매개체로부터 소녀를 보호할 수 있는 면역세포 10억개를 주사했다. 이후 수많은 유전자 요법이 행해져 왔으며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왓슨과 크릭은 저 유명한 이른 바 '이중나선‘으로 간략히 불리는 이 논문을 발표할 때 자신이 유명인이 될 것으로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논문이 발표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들의 연구업적은 왓슨과 크릭 두 사람의 이름을 과학사에 영원히 한데 묶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연구는 당시 갓 태동하기 시작한 분자생물학이라는 생물의 발생과 활동을 통제하는 분자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의 밑바탕이 되었다. 이들의 DNA구조 발견으로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던 “생물은 너무 복잡해서 보통 물체에 적용되는 과학의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9■체세포 복제양 돌리의 탄생

 1996년 7월5일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처에서 양 한 마리가 태어났다. 정부산하 로슬린연구소와 PPL세라퓨틱스의 과학자들은 이 양이 얼마나 살 것인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7개월 후인 1997년 2월 22일 세계적 권위의 과학지 네이처(Nature)지에는 암수의 생식 관계없이 태어난 복제 양 ‘돌리(Dolly)'의 탄생기사가 등장했다.

충격적이었다. 생물학자들은 포유동물처럼 복잡한 생물은 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어른 세포의 DNA는 피부세포나 눈세포처럼 특수한 세포로 분하되기 때문에 그렇게 보았다. 분화를 거친 이후에는 일부유전작 영원히 잠들기 때문에 어른세포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 내기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다.
▲ 생식없이 태어난 최초의 포유동물인 양 돌리.


하지만 이언 윌마트 박사는 윌마트박사는포유동물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었다. 

윌마트 박사는 우선 복제 대상인 어미양의 젖샘세포에서 유전자만 떼어냈고 그럼 다음 세포를 굶겨서 DNA가 분열단계 들어가도록 했다.

그런 다음 다른 어미양의 난자에서 DNA가 들어있는 핵을 없애고 두세포를 융합, 난자의 DNA에 젖샘세포의 DNA를 넣었다. 이 난자는 분열해서 배아가 됐다. 다른 양의 자궁에 이식된 이 배아는 정상적으로 나타나 새끼양으로 컸다. 

어미양의 가슴은 풍만했다. 유머 넘치는 과학자들은 미국의 가슴 큰 금발의 팝가수 ‘돌리 파튼’을 떠올리고는 그녀의 이름을 이 양에게 붙여 주었다.

돌리가 세상에 나오는 과정은 결코 유머러스하지 않았다.

무려 276번의 실패를 이어간 끝에 이뤄졌다. 과학자들은 양(羊)에게서 확보한 난자 277개의 핵을 제거한 후 여기에 다른 양의 젖샘 세포 핵을 옮겨 심는 여러분의 지루하고 힘든 작업을 감내해야 했다.

이언 윌머트 박사와 케이스 캠벨 박사팀은 이렇게 만들어진 277번째 수정란을 또 다른 암컷의 자궁에 착상시켜 돌리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 검사결과 돌리의 DNA는 그 DNA를 준 양의 것과 똑같았다.  

1957년 스푸트니크 2호에 실려 우주로 날아간 라이카 개 이후 지구를 가장 떠들썩하게 만든 동물의 등장이었다.

10■창조자의 영역인 DNA를 조작하는 인류 

어느새 인류는 DNA가 정해진 염기배열을 지난 다른 DNA와 결합하는 성질을 이용해 유전자 검사나 유전자해석연구를 위한 DNA칩을 개발해 활용하고 있다

유전자조작기술을 응용해 벼,감자,토마토 등에 수확량이 많아지거나 병충해에 강하거나 물러지지 않는 유전자를 삽입하거나 그 유전자의 기능을 조작해 식물의 품종개량을 할 수 있게 됐다.

유전자 이상에 의한 병을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 대한 치료도 시도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치료개념은 유전자이상이 있는 사람의 세포에 벡터라는 유전자 삽입도구를 이용해 정상유전자를 넣는 방식으로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복제양 돌리 이후 다양한 생명체 복제를 시도하고 있는 과학자들 가운데 그 누군가는 이제 어디선가 복제인간을 만들려고 시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